먹튀를 아십니까?
작성일 : 2015-12-31
작성자 : 홍장표
[경제칼럼] '먹튀'를 아십니까?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부산일보 2005/10/28일자 035면 서비스시간: 11:21:34 프린터출력 창닫기
프로 스포츠 세계엔 '먹튀'라는 은어가 있다. '먹고 튄다'의 줄임말인데,거액을 주고 영입한 선수가 몸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먹튀 선수'라 한다. 2002년 텍사스와 5년간 6천500만 달러라는 거액에 계약을 맺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던 박찬호도 '먹튀' 명단에 들어간다. 이런 '먹튀'라는 말이 스포츠계뿐 아니라 경제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펀드 가운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세금 한 푼 안내는 펀드가 '먹튀 펀드'이다. 얼마 전 세금포탈 혐의로 외국계 투자펀드가 당국에 적발되었는데,론스타,칼라일,골드만삭스,에이아이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투자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런 외국계 펀드들이 올린 차익만 5조원을 넘는데도,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던 것이다. SK와 경영권 다툼으로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올해 초 SK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한 소버린자산운용의 행태도 '먹튀'에 해당된다. 이들은 1천억원을 투자해 무려 8천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최근 브릿지증권 매각과정에서도 '먹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외국계펀드가 유상감자와 배당을 통해 투자자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한 뒤 마지막 수순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말처럼 국민경제에 보탬이 된다면 외자든 내자든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급전이 필요했던 만큼 외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정부가 각종 특혜를 약속하면서 외자유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 외환위기 이후 유입된 외국자본이 기업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금융산업의 재건에 도움을 준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외환위기 때와 사뭇 다르다. IMF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우리 경제는 매력 있는 투자처로 부상하였다. 외국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만큼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경쟁력 있는 업종을 두루 갖춘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국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삼성전자,SK텔레콤,포스코와 같은 우량 기업 주식의 대부분이 이미 외국인에 의해 장악되었다.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권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재 국내 8개 시중 은행 중 한미은행,제일은행,외환은행은 외국인 소유이고,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60∼70%에 달해 금융권은 사실상 외국인의 수중에 있다. 이렇게 달라진 사정 속에서 최근 일부 외국자본이 보여주고 있는 '먹튀' 행태를 놓고 비판의 여론이 높다. 투기적인 외국 자본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투기성이 강한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자본이라면 가리지 않고 상전 모시듯 떠받드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처럼 외국자본의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외국자본 유치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경제자유구역,국제자유도시 등 지역경제 회생을 위한 경제특구 사업들이 외자 유치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되고 있다. 경제특구에 들어오는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부지임대료와 세금감면 등 각종 우대 조치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특구개발에 성공한 중국이 최근에는 외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줄이고 국내기업과의 동등 대우 원칙을 강조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는데도 말이다.
동남권 경제자유구역 개발의 핵심 사업도 외자유치로 향하고 있다. 동남경제권은 항만물류 분야와 자동차부품,조선기자재를 비롯한 제조업과 관광레저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향후 개발이 본격화된다면 외국기업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외국기업 유치 실적 올리기에만 몰두한다면 '먹튀'와 '옥석'은 어떻게 가릴 것인가? 지금은 외자유치 실적 쌓기에 더욱 분발하라고 말하기보다는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지역경제 회생에 도움이 될 '옥석' 기업을 유치하라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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